챔피언과 도전자와 한 판의 승부
- 저자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출판
- 열린책들
- 출판일
- 2020.04.20
늙은 체스 챔피언에게 한 젊은이가 도전한다. 그는 실력이 검증된 바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관객은 당연하게도 챔피언의 승리를 점쳤고, 아마 챔피언 또한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도전자의 수는 점차 과감해졌으며, 그는 초보자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힘없이 수를 두었다.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관객들은 도전자가 사실 놀라운 실력을 숨긴 고수라 여겼고, 예측불허의 공격에 챔피언은 당황한다. 하지만 게임은 결국 챔피언의 승리로 끝났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도전자는 정말로 별 실력 없는 초보였기 때문이다. 챔피언조차 당황할 정도로 변칙적인 수는 단지 그가 체스를 잘 몰랐기 때문에 둘 수 있는 수였고, 도전자는 그저 고민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사실 챔피언은 간단히 그를 이길 수 있었지만, 도전자의 기세에 말려들어 불필요한 접전을 했던 것이다. 패배한 도전자는 자리를 떠나고, 챔피언도 진정한 승리라고는 할 수 없는 채로 이야기는 끝난다.
같은 작가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콘트라베이스」와 비슷한 유형의 책이다. 짧고, 한정된 장소와 인물을 다루며, 감정과 상황에 대한 묘사는 세밀하다. 관객의 심정은 전달되나 두 체스 플레이어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데, 이들의 행동만으로도 늙은 챔피언과 젊은 도전자가 어떤 인물인지 그려진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작품의 의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있다. 저자는 챔피언을 몰아세운 도전자의 과감한 수를 용기있다며 띄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체스 플레이어로서 수준 미달이며 무례하기까지 하다. 그렇다 해서 승리를 얻어낸 챔피언을 노련하다며 높이지도 않는다. 그는 초짜에게 휘둘린, 챔피언이라기엔 부족한 자다. 그럼 작가는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가? 그런 건 없다. 「콘트라베이스」와 같이, 그저 독자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 주는 것이 전부다. 체스 게임 하나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것을 필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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