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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인도 왕비의 유산」- 쥘 베른

by omicron2000 202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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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무기는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인도 왕비의 유산(개정판)(쥘 베른 걸작선 8)
쥘 베른 장편소설『인도 왕비의 유산』. 187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정치ㆍ과학과 관련된 세계 정세와 도시 풍경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과 예지력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근거한 19세기 말 유럽의 구체적인 시대상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전쟁에 사용되는 미래의 무기 개발이나 21세기를 연상시키는 도시 계획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 왕비의 막대한 유산을 두 과학자가 상속한다. 인류 평화와 행복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환경과 복지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프랑스의 사라쟁 박사와, 권력과 정복의 강철 도시를 세우고 가공할 병기를 만들어 팔아넘기는 독일의 슐츠 교수. 세계 지배의 야망을 지닌 슐츠는 새로 개발한 초대형 포탄을 발사하여 유토피아를 파괴하려고 하는데…. (개정판) ☞ 시리즈 살펴보기! 쥘 베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쥘 베른 걸작선」시리즈.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쥘 베른의 대표작들을 번역가 김석희가 완역하였다. 그동안 '공상과학소설' 또는 '모험소설'로 평가되며 정통적인 문학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쥘 베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달나라 탐험』은 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이다.
저자
쥘 베른
출판
열림원
출판일
2009.01.27

 인도의 왕비가 사망하고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이 천문학적인 재산의 상속자는 프랑스의 사라쟁 박사와 독일의 슐츠 교수로, 그들은 이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가 자신만의 이상도시를 건설한다. 사라쟁 박사는 평화와 상생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인 프랑스빌을, 슐츠 교수는 강철로 된 거대 공장도시를 짓게 되고, 슐츠 교수는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을 빼앗겼다 생각해 프랑스빌을 파괴할 음모를 꾸민다. 그는 초대형 대포로 포탄을 발사해 프랑스빌을 공격하려 하지만 대포의 지나친 출력으로 지구 탈출 속도를 넘어선 포탄은 인공위성이 되어 실패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사라쟁 박사의 아들 옥타브와 그의 친구는 음모를 막기 위해 강철 도시에 잠입하나 슐츠 교수는 이미 자신의 무기에 의해 사망하고 난 뒤였고, 프랑스빌의 안전이 지켜진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쥘 베른은 허버트 조지 웰스와 함께 19세기 SF문학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SF 장르는 과학기술의 현실성과 과학적 묘사를 중시했는가, 기술로 인한 사회상의 변화에 집중했는가에 따라 하드 SF와 소프트 SF로 나뉘어지는데, 베른과 웰스는 각각 하드와 소프트 SF를 대표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쥘 베른은 방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최신 학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잠수함과 같은 장치를 구상하였으며, 웰스의 경우 타임머신이나 투명인간처럼 현실성이 떨어지는 소재를 사용하면서 그에 따른 사회적, 심리적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 왕비의 유산」은 그런 베른의 작품중에서도 소프트 SF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이는 당시 시대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인도 왕비의 유산」의 중심소재는 두 도시의 전쟁으로, 각각의 설립자가 프랑스인과 독일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중 프랑스인이 명백한 선역을 맡고 있고, 독일인은 악역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작품이 출판되기 9년 전, 1870년 일어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864년에 쓰인 「지구 속 여행」의 주인공 리덴브로크 교수는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묘사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이를 단순히 적국에 대한 증오심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슐츠 박사의 강철 도시는 실제로 철혈 정책을 내세운 비스마르크의 독일 제국을 모티브로 했으며, 이후 등장하는 히틀러의 제3제국과도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쥘 베른의 다른 작품에서는 제국주의와 전쟁에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슐츠 교수는 단순히 전쟁을 추구하고 무기에 집착하는 집단의 전형으로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가 하필 독일인으로 나온 것은 베른이 보기에 독일이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슐츠의 최후처럼 독일 제국도 전쟁을 일삼다간 언젠가 자멸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당시 사회에 적용시켜 해석이 가능한 이 작품은 하드 SF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슐츠의 포탄과 이를 발사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대포가 크면 클수록 견딜 수 있는 폭발력도 크고, 따라서 포탄을 발사했을 때 파괴력도 막강해진다. 슐츠 교수는 여기에서 착안해 프랑스빌을 단번에 파괴할 수 있을만큼 큰 대포를 만들지만 이 대포가 실제로 타격에 성공하지는 못하는데, 물체가 약 11.2km/s의 속도를 넘기면 지구의 중력권에서 벗어나 위성 궤도에 오르기 때문이다. 이로써 슐츠 교수는 본의 아니게 최초로 인공위성을 띄운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물리에서도 다루는 내용이지만 인공위성은커녕 로켓도 없던 시대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대단히 선구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슐츠 박사가 개발한 포탄 또한 과학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금속 용기 안에 고체화된 이산화탄소를 가득 넣어놓고 이를 나무통으로 감싼 포탄으로, 충격에 의해 용기가 깨지면 안의 드라이아이스가 급속도로 기화하며 열을 흡수해 넓은 범위를 말 그대로 얼려버리는 것이다. 당시 물리량의 측정이 정확하지 못해 위력이 과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무기가 슐츠의 최후를 불러왔다는 점을 보면 상당히 상징적인 무기이다. 이 포탄을 곁에 두고 있다 새어나온 냉기에 얼어죽는 그는 막강한 무기를 만들었지만 이를 자신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파멸을 초래한 꼴이다. 반경 수km의 모든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이는 핵무기를 연상시키는데, 어쩌면 핵을 곁에 두고 서로 견제하는 현대의 국가들에게 경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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