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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지구에서 달까지」- 쥘 베른

by omicron2000 2020.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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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과학을 낭비하지 마시오, 더 좋은 쓸 데가 많이 있으니.

 
지구에서 달까지
풍부한 알레고리와 유쾌한 풍자, 예언적일 만큼 정확한 과학적 통찰로 가득 차 있는 쥘 베른의 대표적 과학소설 『지구에서 달까지』. 쥘 베른은 이 작품을 통해 인류의 폭력적 성향이 세계사에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를 상상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면서, 미국인의 폭력성은 실제로는 민주주의적 자유가 기괴하게 도착된 형태라는 통찰을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우주여행을 소재로 한 『지구에서 달까지』는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 창설된 ‘대포 클럽’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북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무기 개발과 애호의 명분을 잃어버린 클럽 회원들은 무기력하고 따분한 일상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때 바비케인 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제의한다. 그들의 노하우를 이용하여 달나라에 포탄을 발사할 대포를 만들자고 제의한 것이다. 이 야심적인 계획에 매료된 프랑스인 미셸 아르당이 나타나, 포탄 속에 타고 달나라로 가겠다고 자원한다. 이야기는 여행 준비와 거기에 따르는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저자
쥘 베른
출판
열림원
출판일
2022.06.30

 미국 전역을 휩쓴 남북전쟁이 끝이 나고, 군용 대포의 개발과 발사에 열을 올리던 '볼티모어 대포 클럽'의 회원들은 더 이상 전쟁에 사용할 대포가 필요 없어지게 되자 그 대안으로 새로운 계획을 제시하는데, 바로 지금까지의 그 어느 대포보다 강한 대포를 만들어 사람을 달로 쏜다는 것이다. 달로 가는 것이 가능한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어땠겠는가. 「지구에서 달까지」는 쥘 베른답게 이런 허무맹랑하면서도 참신한 도입부를 가지고 시작한다.

 우선 제목도 그렇고 여기까지만 보면 대포를 발사해서 달로 간 뒤 달나라를 탐험하는 내용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우주선(포탄)을 발사하는 과정에 대부분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달로 간 이야기는 후속작인 「달세계 탐험」의 내용이고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발사하기까지의 과정만을 담았다. 따라서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그렇게 넓은 배경을 가지진 않는다. 기껏해야 발사장과 우주선 내부 정도만 나올 뿐, 저자의 다른 작품 대부분이 넓은 공간을 누비며 벌이는 모험을 다룬다는 점에 대조적이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에서는 쥘 베른 세계의 중요한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모험과 과학 중 모험의 요소는 배제하고 과학과 사회적인 요소가 대부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주선을 발사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학기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대포를 이용해서 발사한다고 했으니 대포의 크기는 매우 커야 하고, 그렇다면 그렇게 거대한 대포를 만들 수 있는 철과 화약 등의 재료가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대포를 만들 수 있는 노동자들도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 무엇보다 재료비, 인건비 등 이 모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자본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런 현실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모두 고려해서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주변에 도시가 있으면 소음 등의 문제가 생기니 도심지는 피하되 사람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하고, 수월히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 적합하다는 근거를 내세워 저자가 선택한 곳은 플로리다였는데, 놀랍게도 현재 케네디 우주 센터의 위치와 유사하다. 저자의 과학적 혜안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체적인 내용이 우주선을 만들고 발사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룰 뿐 장대한 모험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기대와 다르다고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다른 '경이의 여행' 시리즈가 탐험가들이 미지의 장소를 모험하는 데에서 오는 동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다면 「지구에서 달까지」는 연구자들이 고군분투하는 데에서 오는 정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다. 방향성이 조금 다르지만 이 작품 또한 엄연한 쥘 베른의 작품이며,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경이로움을 찬양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달로 가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난 덕분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인도 왕비의 유산」 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전쟁에 대한 조소가 담겨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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