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속의 대지를 거닐며

들어가기 전에 지구 공동설에 대해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지구 내부에 거대한 빈 공간이 있다는 가설이다. 더 나아가 땅속에도 생물과 생태계가 있고, 태양을 대신할 광원이 있으며, 심지어 사람(그러니까 지저인地底人)까지 살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인데, 18세기 영국의 천문학자 네빌 마스켈린이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시할리온 산 인근에서 중력을 측정, 지구의 밀도를 측정함으로써 공동의 가설은 무력화되었다. 마스켈린이 측정한 지구의 평균 밀도는 약 4.5 g/cm³였는데, 땅속이 비어 있다면 지표면의 밀도가 그보다 높아야 평균이 맞겠지만 정작 암석의 밀도는 그보다 낮은 2.5 g/cm³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박된 지구 공동설 자체는 말할 필요도 없는 유사과학이지만 바로 우리 발밑에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미스터리나 모험 소설에서 적잖이 인용되곤 하는데, 또 다른 <경이의 여행> 시리즈이자 쥘 베른의 대표작인「지구 속 여행」또한 그중 하나다. 소설이 출간된 해는 1867년으로, 지구 공동설이 반박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기에 과학에 밝은 쥘 베른이 지구에 공동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흥미를 위해 도입한 설정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독일인 지질학자 오토 리덴브로크 교수와 그의 조카이자 조수, 악셀이다. 리덴브로크 교수는 쥘 베른의 전형적인 독일인 스테레오타입을 따라 깐깐하고 괴팍한 인물로, 연구에 있어서는 괴짜에 가까울 정도다. 반면 순박한 청년 악셀은 학문보다는 리덴브로크 교수의 대녀인 그라우벤에게 마음이 가 있다. 둘은 고문서에서 암호문을 발견해 해석에 몰두하는데, 악셀이 우연히 해독에 성공하자 드러난 내용은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 아르네 사크누셈이 지구의 중심으로 가는 통로를 찾아 모험을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흥분한 리덴브로크 교수는 악셀을 데리고 아이슬란드로 출발하고, 솜털오리 사냥꾼인 한스를 가이드로 고용해 아르네의 자취를 따라 화산 속으로 들어간다. 일행은 빛을 내는 지하의 대기, 마스토돈을 방목하는 거인, 장경룡과 어룡의 전투 등 온갖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고, 지하에서 고립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나 기지를 발휘해 간헐천을 타고 탈출에 성공한다. 이렇게 고향에 돌아간 악셀은 그라우벤과 결혼한다는 해피 엔딩이다.
쥘 베른은「해저 2만 리」에서는 잠수함을,「인도 왕비의 유산」에서는 인공위성을,「카르파티아 성」에서는 3D 영사 장치를,「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플로리다의 우주선 발사 기지 (NASA가 플로리다의 휴스턴에 위치한다) 를 등장시키며 마치 미래의 과학기술을 직접 보고 예언이라도 한 듯, 특유의 과학적인 통찰력에 기반한 사실적 묘사로 명성이 높은 작가다. 하지만 그의 진짜 능력은 과학적인 묘사보다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구축에 있다.「지구 속 여행」을 예로 들자면, 리덴브로크 교수는 과학에 몰두할 때는 제멋대로에 괴팍한 성격이 드러나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조카를 아끼고 있기에 악셀이 위험에 빠지자 온 힘을 다해 구하는 사람이다. 악셀은 유약한 성격을 가졌으며 삼촌보다 과학적인 능력도 부족하지만, 이따금씩 아이디어를 내서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고, 모험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과묵하고 충직한 한스는 노련함을 살려 두 과학자들이 하지 못하는 신체활동에 힘쓰며, 아이슬란드인이라 대사도 몇 줄 없지만 든든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소설의 상당 부분이 이렇게 단 세 명의 인물만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지루함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각각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극을 이끌고 있다는 방증이다. 저자는 이후에「해저 2만 리」에서도 과학자 아로낙스 교수, 조수 콩세유, 그리고 육체파 네드 랜드로 비슷한 구성을 보였는데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어 리덴브로크의 다혈질성은 네드로, 한스의 충직함은 콩세유로 옮겨갔다.), 이쪽에서는 노틸러스호와 네모 선장이라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조연이 있어 주인공 셋의 매력은 덜한 편이다. 어쨌거나 이후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쥘 베른의 소설 중 과학적으로는 가장 엉터리나 다름없으면서도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가장 높다는 점이「지구 속 여행」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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