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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자연과학

「이중나선」- 제임스 왓슨

by omicron2000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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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 과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까지

 
이중나선
20세기 과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평가받는 DNA 구조를 발견하는 과정과 인물들, 특히 과학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소 직설적이고 유머스럽게 써내려간 『이중나선』은 과학자들의 세계를 막연하게만 이해해왔던 독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이는 단지 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비 과학도 혹은 이 분야의 문외한이 읽어도 과학자라는 인물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애송이 미국인 과학도가 영국 케임브리지에 유학하면서,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숙제였던 DNA 구조의 모형을 만들고 설명해내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DNA 구조를 밝혀내는 과정을 둘러싸고 동료인 프랜시스 크릭, 라이너스 폴링, 모리스 윌킨스, 로잘린드 프랭클린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포진한 상황에서. 왓슨은 과학적 업적을 서로 먼저 이루기 위해 펼치는 치열한 경쟁과 갈등, 속임수, 실패와 좌절, 우연히 떠오른 영감 등이 잘 묘사하고 있다. 그동안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오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중나선』이 지금까지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얻는 스테디셀러가 된 까닭은 장차 과학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과학자와 그들의 연구의 본질은 무엇인지, 또한 자신들이 활동하게 될 과학자 사회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길잡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
제임스 왓슨
출판
궁리
출판일
2019.07.30

 DNA는 생명체의 세포 속에 있는 유전 물질 중 하나로, 사람을 포함한 상당수의 고등 생물이 가지고 있는 설계도와도 같다. 과거 과학자들은 DNA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세포 하나만 해도 대단히 작아 현미경을 이용해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세포 속의 핵, 그리고 그 핵 안에 있는 DNA의 구조를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다. 세포분열 시기에 생기는 염색체를 관찰하는 것은 현미경으로도 충분했지만, DNA는 그 염색체가 실처럼 길게 풀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두 번에 걸친 노벨상 수상으로 당시 가장 명망 높았던 라이너스 폴링은 물론,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 등 여러 과학자들이 이에 도전했으나, 정작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파악하고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그들과 같은 베테랑 과학자가 아닌, 초짜 과학자 왓슨과 크릭이었다. 제임스 왓슨은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자신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를 알아냈는지 책으로 펴냈다.

 과학적인 과정이나 이론에 대한 내용보다는 경험 위주로 작성된 책이다. 자신이 연구소에 와서 동료 프랜시스 크릭을 만난 것부터 시작해서 다른 과학자들과 만난 일이라거나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는데, 생물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학자들이 어떻게 연구하는지, 연구실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을 짐작하게 해 준다. 왓슨 본인이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도 좋아서 제법 재미있게 읽히기도 한다. 특별히 학문적 내용이 있는 교양과학서라기보다는 노벨상 수상자의 에세이 내지는 수기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저자와 관련해서 유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사건 자체가 조금 복잡하다.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보자면 라이너스 폴링,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 왓슨과 크릭으로 크게 세 팀이 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폴링의 경우 노벨상 수상으로 능력은 확실히 검증된 과학자이지만,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이 있어 미 정부가 출국을 제한했기 때문에 연구가 부실하게 이루어져 잘못된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프랭클린은 분명 유능한 과학자였지만 성격이 독선적이고 까칠한 부분이 있어 동료 윌킨스와 잦은 갈등을 겼었고, 그 독선 때문에 DNA의 X-ray 사진 자체는 가장 명확하게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 나선이라는 주장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와의 갈등에 지친 윌킨스가 프랭클린의 데이터를 왓슨, 크릭에게 제공하였고, 그들은 결국 프랭클린이 찍은 사진을 이용해서 노벨상을 받은 셈이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노벨상을 가로챈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에서 말했듯 프랭클린은 잘못된 가설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X-ray 회절 사진을 이중 나선이라는 형태로 정확히 알아낸 것은 왓슨과 크릭의 공이 분명하다. 노벨상 또한 사진을 해석한 왓슨과 크릭, 그리고 사진을 찍은 윌킨스 셋이 함께 받았으니 모두 인정받은 것은 맞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시상 당시 이미 요절한 상태라 받을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왓슨은 간접적으로나마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공을 축소해서 말한 것이다. (프랭클린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무시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많은 비난을 받은 후에 어느 정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도 성차별적·인종차별적 발언을 여러 번 일삼아 논란을 키운 그는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생계를 위해 노벨상을 팔아야 한 최초의 수상자가 된다. 이렇듯 저자가 인격적으로 상당한 비판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중나선」에 나온 내용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이중나선」은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객관적인 책이 아닌, 단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시점에서 본 책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느낀 점 등은 신뢰할 만하지만, 당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책도 함께 읽는 편이 좋다. 특히나 여성 과학자의 처우가 열악한 당시 상황에서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언급이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을 읽을 때에는 교차검증과 독자의 적절한 판단이 필수적이다. 다만 이 책을 쓸 당시는 왓슨이 딱히 인격적으로 논란이 있지도 않았고, 자신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것에는 탁월했기에 이 점만 유의한다면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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