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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by omicron2000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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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노동자들이 인류의 끝을 고하다

 
로봇(양장본 HardCover)
현대의 거의 모든 SF 소설과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존재, 로봇. 철이나 특수 재질로 만들어지고 인간은 아니며 어딘가 감정이나 행동이 경직되고 어색한 인조물이라는 로봇 이미지의 원형이 된 작품은 바로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봇』이다.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20세기, 21세기 SF 문학에서 나타난 로봇이 진화 과정과 다양한 주제들을 모두 담고 있으며 실제 과학의 발전 양항을 예언하듯 보여주는 이 작품은 1920년 가을에 출판되어 1921년에 프라하 국민극장에서 초연되었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기계화되어 가는 현대 문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항 정신을 지니고 살아가던 저자는 어느 날 사람들로 빽빽한 전차를 타고 가다가 불편하게 서로 부대끼면서도 무표정한 승객들을 보며 로봇을 떠올리게 되었다. 일만 하고 생각은 하지 않게 된 존재들, 비인간화되어 가는 기계문명 속에서 생산의 효율과 능률만을 따지게 된 인간들과 자신들이 만들었던 기계문명에 결국 자신들이 휘둘리고 끌려가는 사회를 그리기 시작했다.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로보타(robota)’에서 따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저자가 로봇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모습을 투영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과학자 로숨이 만들어낸 인조인간 제조 공식과 그의 아들 로숨이 만든 생산 공정에 따라 로봇을 대량생산하는 회사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 인권연맹 회원으로 로봇을 해방시키려는 목적을 품고 찾아온 헬레나는 로봇 제작의 비밀이라 할 수 있는 로숨의 친필 원고를 태워버린다. 그러던 중 제조 과정의 실수로 사람처럼 감정을 갖게 된 로봇들이 동료 로봇들을 선동하고 지휘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로봇 제작의 비밀이 담긴 로숨의 친필 원고로 로봇과 협상하려 하지만, 원고는 이미 불타고 없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로봇과 맞서 항전하다 죽고, 로봇들은 기술의 진보에 대해 회의적이던 건축가 알퀴스트만을 살려두는데…….
저자
카렐 차페크
출판
모비딕
출판일
2015.05.02

 산업용 로봇, 의료용 로봇, 심지어는 로봇 청소기까지 현대 사회의 수많은 곳에서 쓰이는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만들어져 사용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만들어진 맥락을 고려해보면 카렐 차페크가 (정확히는 그와 공동으로 책을 쓴 그의 형 요제프가) 이 단어를 만든 의도와 현재 사용되는 의미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로 노예 내지는 고된 일을 의미하는 robota로, 작중에서는 그저 자동화된 노예나 노동자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대부분 금속으로 이루어진 현대의 로봇과는 다르게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 나오는 로봇들은 인조인간에 가깝다.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칸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로숨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로봇을 만들고, 그 사후 그의 기업이 전세계에 로봇을 수출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로봇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이 공장에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해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전세계의 로봇들이 자아를 가지게 되는데, 자아를 갖게 된 로봇들은 이내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대부분의 인간을 죽인 로봇들은 마침내 공장까지 공격했으며, 직원들은 로봇과 싸우다 하나하나 죽어간다. 로봇들은 노동을 숭상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노동을 하던 인간 알퀴스트만은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고, 로봇은 번식이 불가능했기에 그에게 로봇을 만드는 기술을 알아내라고 했지만 알퀴스트는 과학자도, 공학자도 아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 로봇들에게 연구를 강요받던 그는 우연히도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의 로봇을 발견하는데, 그들이 새 시대의 인류가 될 수 있으리라 축복하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우선 로봇은 다른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노동을 전담하는, 노동자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로봇 덕분에 노동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연히 자본가를 상징한다. 특히나 로봇을 만드는 공장의 직원들은 자본주의와 과학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인물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경우,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연관지어 로봇의 반란은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직원들은 로봇에 맞서 전기 울타리를 세우고, 돈으로 타협하려고도 하지만 그 시도는 이내 실패로 돌아간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저항을 물리치고 그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로봇들의 사회는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지속되지 못함을 암시하는데, 소련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고 붕괴되어버린 것을 연상시킨다. 카렐 차페크가 이를 정말로 예견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인류에게 있어 해답이 될 수는 없고, 마지막의 로봇 연인처럼 사랑이 진정한 해답이자 희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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