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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카르파티아 성」- 쥘 베른

by omicron2000 2020.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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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유령도, 움직이지 않는 발도 모두 과학의 소행이었다

 
카르파티아 성(개정판)(쥘 베른 컬렉션 7)
쥘 베른 장편소설『카르파티아 성』. 쥘 베른이 새롭게 시도한 초자연적 미스터리로, 그의 후기작들에 나타난 염세적 면모와 과학적 한계에 눈을 돌린 사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과학적 통찰로 가득한 쥘 베른의 작품 세계를 한층 더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작품이다. 흡혈귀 전설이 남아 있는 트란실바니아의 카르파티아 산중, 아무도 없을 고르치 남작의 고성에서 한 줄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때부터 기괴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해 나선 텔레크 백작은 성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지만, 그곳에서 5년 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오페라 여가수 스틸라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게 되는데…. (개정판) ☞ 시리즈 살펴보기! 쥘 베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쥘 베른 걸작선」시리즈.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쥘 베른의 대표작들을 번역가 김석희가 완역하였다. 그동안 '공상과학소설' 또는 '모험소설'로 평가되며 정통적인 문학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쥘 베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카르파티아 성』은 이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저자
쥘 베른
출판
열림원
출판일
2009.01.20

 동유럽의 카르파티아 산맥에는 한 오래된 고성이 있다. 아무도 살지 않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늘 고성을 무서워했는데, 그곳에서 유령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들리기 시작한다. 마을에서는 두 사람을 보내 유령 소문이 사실인지 알아보고 오라 했고, 그들은 성 코앞까지 당도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한 명은 발이 땅에 못 박힌 듯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으며, 다른 한 명은 쇠사슬을 타고 성벽을 오르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떨어졌다. 정말로 유령의 소행이라고밖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카르파티아 성」은 이 기현상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카르파티아 산맥의 공포스러운 고성이라는 소재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나오는 드라큘라 성을 연상시키는데, 드라큘라가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마을에 한 이방인이 찾아오고, 그가 성에 들어가 진실을 밝혀낸다. 사실 그 고성에는 과학에 능통한 귀족 한 명이 살고 있었고,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온갖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발이 땅에 고정되었던 것은 땅 속에 매설된 전자석을 작동시켜 신발의 징이 자석에 달라붙어버린 것이고 (그래서 둘 중 신발에 징이 박힌 한 명만 걸렸다), 쇠사슬에는 전기를 흘려 전기충격으로 상대를 기절시켰다. 노래하는 유령의 경우에는 영사기를 틀어 놓고 유리를 앞에 기울여 놓아 마치 입체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며, 그 옆에는 전축을 틀어 노래까지 들렸던 것이다. 기현상의 비밀이 밝혀지고 난 뒤 카르파티아 성에서 있었던 모든 일의 전말이 드러나는데, 그 귀족이 사모하던 여배우가 죽자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영사기와 전축에 그녀의 흔적을 담았다는 것이다. 전자석과 쇠사슬은 다른 사람들이 성에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보안 장치의 일종이었다.

 「카르파티아 성」은 쥘 베른의 작품치고는 특이하게도 공간적으로 멀리 떠나는 모험의 요소는 없다시피 하고, 오히려 반전을 거듭하는 어두운 추리극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쥘 베른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노년에 쓴 후기 작품이기에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분위기 이외에 이 작품의 주요 특징이라면 미신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이 있는데, 이는 당시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쥘 베른이 살던 시기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뜻)라고 불리던 시대로,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에 힘입어 생활양식이 크게 변화하던 시기를 말하기 때문이다. 벨 에포크 시대에는 발전된 생산량이라는 밝은 면과 식민지와 노동자 처우라는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쥘 베른은 그중 밝은 면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한 작가로 꼽힌다. (다만 「신비의 섬」에 나오는 네모 선장처럼 벨 에포크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특징을 종합하자면 「카르파티아 성」은 기술이 발전하자 기존의 미신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임으로써 당시 시대상을 짐작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쥘 베른의 작품치고 분량이 긴 편도 아니고 등장하는 과학 원리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간편히 읽히는 SF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장르적으로 생각해보면 「카르파티아 성」은 「드라큘라」 등 고딕 호러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을 주요 소재로 했다는 점과 합쳐서 SF와 고딕 호러라는 두 장르의 결합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딕 호러의 특징인 미신과 설명 불가능한 공포를 SF적인 눈으로 분석하는 것에 가깝긴 하지만, 상당히 신선한 시도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공포 소설의 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흡혈귀라는 소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비교했을 때 어찌 보면 그 직계 조상이 되는 작품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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