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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판타지

「호빗」- J. R. R. 톨킨

by omicron2000 2020.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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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에는 뭐가 들어 있지?

 
호빗(The Hobbit)
불평불만 난쟁이들과 소심한 호빗 빌보의 위험천만 모험 이야기 『호빗』. <반지의 제왕>의 서막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자, 판타지 문학의 J.R.R. 톨킨이 창조한 신화적 세계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다. <반지의 제왕>의 등장인물인 빌보가 반지를 얻게 되는 과정, 골룸과의 만남 등이 이 작품에 그려져 있다. 간달프, 소린과 난쟁이들, 엘론드의 이야기도 함께 등장한다. 절대반지의 출현, 그리고 불평불만 난쟁이들과 소심한 빌보의 유쾌한 모험담이 펼쳐진다.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호빗 빌보의 집에 어느 날 난쟁이들과 간달프가 찾아온다. 그들은 무서운 용 스마우그가 지키고 있는 보물을 찾아 떠나자고 하고, 그때부터 빌보의 험난한 모험이 시작되는데…….
저자
J R R 톨킨
출판
씨앗을뿌리는사람
출판일
2012.12.21

 판타지 세상의 사람들은 대개 모험을 즐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운데땅에 사는 작은 호빗들은 특이하게도 그 정반대이다. 시골에서 한적하게 사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나른히 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인생의 낙이다. 주인공 골목쟁이네 빌보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조상은 고블린의 머리를 곤봉으로 쳐 날려 버릴 정도로 강한 인물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그런 모험은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들 프로도가 정원사 샘과 함께 「반지의 제왕」의 여정을 나서기 전까지 가장 큰 모험을 겪은 호빗이 된다. 그 모든 일은 그의 친구이자 위대한 마법사 회색의 간달프가 열세 명의 난쟁이들을 데리고 그를 찾아오며 시작한다.

 빌보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난쟁이들에게는 상당히 심각한 사정이 있었다. 그들의 고향이었던 에레보르를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기고, 난쟁이 왕국의 왕들은 고블린들과 싸우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그 왕족의 마지막 후손인 참나무방패 소린은 에레보르를 되찾기 위해 열두 명의 가신들을 동원했고, 소린과 만난 간달프는 호빗이 큰 도움이 되리라 짐작해 친분이 있던 빌보를 그들에게 소개한다. 결국 얼떨결에 난쟁이들의 모험에 말려든 빌보는 간달프의 인도를 받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에레보르로 향하게 된다. 곰으로 변하는 남자 베오른, 거대한 독수리들, 숲 속에 사는 요정들과 와르그를 타는 고블린, 햇빛을 보면 돌로 변하는 식인 트롤까지, 가운데땅의 여러 종족을 만나며 모험을 겪은 빌보였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를 대자면 단연 골룸과의 수수께끼 대결이다.

 후속작인 「반지의 제왕」에서도 큰 인상을 남기며 주요 인물로 활약하는 골룸은 이때까지만 해도 굴 속에서 반지와 함께 사는 존재일 뿐이었다. 자신이 사는 굴로 빌보가 떨어지자 골룸은 그를 잡아먹으려 했으나 이내 둘은 목숨을 건 수수께끼 내기를 하는데, 뛰어난 문장력을 갖춘 대문호 톨킨답게 각각의 수수께끼도 인상 깊다. 살아서 탈출하기 위해 빌보는 머리를 쥐어짜며 골룸의 수수께끼를 풀지만, 골룸 또한 수수께끼의 명수였기에 가망이 보이지 않았고, 위기에 몰린 빌보는 비장의 무기를 쓴다. "내 주머니에는 뭐가 있게?" 골룸은 세 번의 기회를 사용했으나 전부 틀려 결국 빌보를 보내주게 되는데, 사실 빌보의 주머니에는 골룸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반지(착용자를 투명하게 만드는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가 있었다. 스마우그는 빌보가 투명해져도 기척을 느낄 수 있었기에 「호빗」에서 이 절대반지가 유용하게 쓰이는 장면은 드물고 골룸도 단역일 뿐이지만, 「반지의 제왕」이라는 역작의 기원이 된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난쟁이들과 빌보가 마침내 에레보르에 도달한 뒤, 빌보가 보물 창고를 둘러보던 중 스마우그가 깨어난다. 스마우그는 이 '좀도둑들'을 조롱하곤 하늘로 날아올라 인근의 마을을 불태우러 갔고, 빌보가 발견한 스마우그의 약점을 호수마을의 경비대장 바르드가 쏘아 용을 처치한다. 난쟁이들의 원한을 풀기 위해 갔지만, 엉뚱하게도 호빗과 인간이 에레보르를 되찾은 것이다. 어쨌거나 이에 감사하며 난쟁이들은 빌보에게 약속한 보물을 주도록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빌보가 보물 창고에서 남몰래 챙긴 보석 '아르켄스톤'이 난쟁이들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보물이었기 때문에 소린은 이 보석을 무슨 일이 있어도 얻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스마우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고 물리치기까지 한 호수마을의 인간들과 스란두일의 요정 군대가 난쟁이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요구하며 대치 중이었기에 빌보는 협상을 위해 아르켄스톤을 바르드에게 넘긴다. 당연히 소린은 분노했고, 빌보를 쫓아내지만,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더 발생한다. 보물을 노린 고블린 군대가 와르그 무리를 이끌고 공격해 일명 다섯군대 전투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과 요정, 난쟁이 군대는 협력해 고블린과 맞서 싸웠고, 간달프가 불러온 독수리와 베오른의 대활약으로 승리하게 된다. 소린은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어 빌보에게 사과한 뒤 사망하고, 에레보르는 지원군으로 온 난쟁이 다인이 다스리게 되며, 빌보는 보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물론 반지도 말이다.

 「호빗」은 신화에 가까운 「반지의 제왕」에 비하면 분명히 동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단순히 동화로만 치부할 수는 없고, 서사시적인 성향도 짙은 복합적인 작품이다. 다섯군대 전투나 소린, 필리, 킬리의 사망 등 동화라고 하기에는 무겁고 진지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호빗」의 주제 또한 동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탐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반지의 제왕」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욕망의 표상이 절대반지였다면, 여기에서는 아르켄스톤이 그 역할을 한다. 다만 절대반지가 신적인 힘이 담긴 물건임과는 반대로 그냥 대단히 예쁜 보석인 아르켄스톤은 그보다 격이 약간 떨어진다. 이는 절대반지의 욕망은 '힘'에 대한 욕망 전반을 다루지만, 아르켄스톤은 그 힘의 일부분인 '권력'만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드러난다. 마법적인 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난쟁이들이 이에 집착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에레보르에서 발견된 가장 진귀한 보석이자 에레보르 왕권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르켄스톤은 보물을 교환하기 위한 수단이자 난쟁이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상징으로 쓰이는데, 권력이란 결국 부와 명예로 이루어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욕망에 있어서 아르켄스톤보다 큰 힘을 가진 절대반지는 그 소유주를 타락시키는 힘마저 있고, 이는 액튼 경의 말로 알려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격언을 연상시킨다. 아르켄스톤 또한 권력을 상징하는 만큼 소린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와 함께 죽은 골룸과 달리 소린은 최후에 자신의 집착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단지 절대반지가 아르켄스톤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공의 적인 고블린을 상대로 맞서 싸운다는 또 다른 명예욕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 명예는 왕족의 그것과는 달리 권력을 주지도 않고, 그보다는 베오울프처럼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순수한 명예욕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그는 신화의 영웅처럼 장렬하게 전사한다. 에레보르의 왕위는 친척인 다인이 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제목부터가 호빗이니 이 책을 논할 때 주인공 빌보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절대반지를 맡기고, 그 전에는 빌보가 가지고 있도록 한 이유는 호빗 특유의 욕심이 없는 성격과 느긋한 특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반지를 보기만 해도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지만, 힘에 대한 집착 자체가 없는 호빗들은 그 유혹 자체를 적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이 너무 강해 유혹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골룸 또한 원래는 호빗이었다.) 절대반지보다 더욱 힘이 약한 아르켄스톤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빌보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했는데, 처음 보았을 때 홀린 듯이 주머니에 넣기는 했지만 그는 이것을 거리낌 없이 바르드에게 넘겨준다. 그 이유도 단순히 난쟁이와 인간이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협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르켄스톤을 바르드에게 넘긴다면 분노한 소린이 빌보의 보물을 몰수하고, 난쟁이들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를 감수하였다는 점에서 빌보의 평화에 대한 욕망이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보다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다섯군대 전투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해 결과적으로는 (고블린을 제외한) 종족 간 단합과 평화가 이루어진다. 한편으로는 걸리는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톨킨답게 깔끔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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