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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by omicron2000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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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왕국의 진화 연대기

 
개미 1(양장본 Hardcover)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개미』 제1권 《제1부 개미》편. 기상천외한 개미의 세계를 개미의 시각으로 흥미 있게 풀어나가면서 사랑과 반역,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추리적 기법을 가미해 개미의 생태를 세밀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13.05.30

 개미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생명체임과 동시에 숫자는 많지만 작고 약하다는 이유로 종종 무시받곤 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 중에서도 '개미'라는 말이 들어가면 작고 하찮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가끔 개미의 근면함을 긍정적으로 평하기도 하지만 즐길 줄 모르고 일만 한다는 식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개미에 대한 이미지는 단지 작고 부지런한 생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작은 곤충에게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하나의 집에 수만여 마리의 개체가 살며, 각자의 역할에 맞게 신체 자체가 다르게 생겨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보다도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미와 인간은 전쟁을 하는 둘 밖에 없는 동물일 정도로 개미 왕국은 인간의 국가만큼 복잡하다.

 개미와 인간을 비교한다면 동물계에서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극단적인 진화를 이룬 생물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이 지성을 극단으로 발전시켰다면, 개미는 본능을 극단적으로 발달시켰다. 이 차이는 그들의 사회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둘 모두 분업을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나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개미의 경우에는 평생 동안 꿀을 모으고, 개미집을 지키는 등 한 가지 일만 하기 때문에 사람보다 더욱 특화되었다 할 수 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의 사회가 닮았을지 몰라도 사람과 개미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직접 만나 대화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개미」는 이런 상상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에드몽 웰즈라는 사람이 개미들의 페로몬 신호를 인간의 언어로 통역하는 '로제타석'이라는 기계를 만들었고, 이 기계가 작품의 핵심적인 소재로 사용된다.

 「개미」는 개미 왕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죽음을 다루는 미스터리로 시작하여, 저자의 다른 책과 비슷하게 신비주의적인 성격을 가진다. 개미와 인간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대화로만 시작했으나 갈수록 그 영향력이 점점 커져 급기야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는 무리도 생겨나게 되고, 인간이라는 고등 생명체와 접촉했기 때문인지 개미가 진화하는 묘사도 등장한다. 실제 생물학적 진화와는 그 형태가 많이 다르니 개미가 인간을 모방하고 비슷해진다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작중에서 진화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했고, 개미가 직립 보행을 하는 장면에서 적어도 저자가 진화를 의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생물학에서는 직립 보행이 무조건 진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개미의 신체가 직립 보행에 부적합하기에 이것은 바람직한 진화라 보기 어렵다. 하지만 신체의 변화 없이 직립에 성공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진화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임을 뜻하며 개미가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기도 많지만 그만큼 비판도 많이 받는 작가인데, 그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조차도 「개미」만큼은 수작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로 「개미」는 그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이라고 볼 수 있다. 베르베르에 대한 주 비판점으로 한 작품에서 사용한 (주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나오는) 소재를 다른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 있는데, 「개미」는 초기 작품이기에 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 좋은 평가에 한몫한다. 오히려 이후 작품이 「개미」에서 소재를 따왔다고 보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 다만 저자의 다른 비판점인 용두사미식 전개는 「개미」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3부 개미 혁명을 제외한 1,2부만이 제대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3부라고 못 읽어줄 수준인 것은 아니지만, 1,2부에 비교하면 그 재미가 떨어진 감이 있다. 반면 「개미」의 최대 강점을 꼽자면 개미의 행동에 대한 세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을 의인화해 표현하는 것 자체는 많은 작품에서 사용하는 기법이지만, 「개미」에서 저자는 본인이 정말 개미라도 된 것처럼 개미의 입장에서 세밀한 묘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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